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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감독론을 쓰라고 해서 스탠리 큐브릭으로 정하고 영화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기 위해 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스탠리 큐브릭이라는 영화 감독의 이름을 많이 들었고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다른 여타의 감독도 많았지만 주저없이 스탠리 큐브릭을 선택 하였습니다.

예전에 풀메탈자켓이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어렸고 스탠리 큐브릭이라는 감독 이름이 아닌 누군가가 재미있다고 한번 보라고 해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면에서 어쩌면 시계태엽 오렌지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세계를 탐구하는 첫번째 영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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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시계태엽 오렌지란 제목을 들었을때 참 신선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계태엽과 오렌지라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들을 이어붙혀 새로운 느낌의 단어를 만들어내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었습니다.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제목은 시계태엽이라는 조직적이고 사회생활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계의장치와 오렌지라고 달콤하고 따뜻한 자연의 산물의 결합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즉 이 제목으로 우리가 알수 있는 사실은 사회적 산물과 자연적 산물 즉 사회와 인간의 결합이라고 할수 있는 현시대의 모순과 대립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알랙스가 폭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부분, 교도소에 들어가 교화되는 부분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화되어 나와 겪게 되는 일련을 수난입니다. 먼저 교화되기전의 알랙스의 모습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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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장면부터 여성의 누드를 형상화한 식탁과 물컵등을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특이한 복장 특이한 연출로 도저히 1970년대의 작품이라 생각할 수 없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장면에서의 알랙스의 독백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이들은 아직 어리다는 것입니다. 술이 아닌 우유를 마시는 대목이 그걸 알 수 있게 해줍니다. 또한 스스로의 폭력성을 언급하기 때문에 잔혹하리라느것, 그리고 주변에 배경으로 섹스라는 소재가 빠질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충격적인 첫장면은 저로 하여금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세계는 어떤것인지 파고들수 밖에 없게 만드는 장면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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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영화는 판타지적인 장면과 함께 특이한 복장을 눈여겨 봐야할 대목입니다. 그가 즐겨입는 흰색 상하의에 영국 신사를 뜻하는 모자와 지팡이 그리고 슈퍼맨을 연상시키는 돌출된 팬티는 그의 심리를 잘 파악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흰색의 옷은 그가 아무것도 물들지 않은 어린아이와도 같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스탠리 큐브릭은 성악설을 지지하는 것인지 그의 폭력성, 잔혹성등을 어린아이와 같은 느낌으로 표현 하였습니다.
 
그리고 영국 신사의 상징인 모자와 지팡이를 흰색의 옷에 입힌것으로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고 싶어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 입니다. 유치원생들도 어린아이 취급 받는 것을 싫어하듯이 그 역시 어린아이가 아닌 어른이 되고 싶어했고 그렇기에 밑에서 언급하겠지만 두 여성을 꼬시는 장면에서 흰옷이 아닌 정장을 갖추어 입음으로 자신의 영역에서 벗어나려 하고 결국 후에 교도소라는 사회에 들어가면서는 완전히 저 흰색의 옷을 벗게 되고 정장을 입게 되면서 그는 더이상 폭력과 섹스를 일삼는 알랙스가 아닌 사회에 구속받아 폭력과 섹스를 멀리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의 돌출된 팬티역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계태엽 오렌지를 보면 영화 전체적으로 섹스라는 소재가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청소년기의 섹스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바로 저 팬티로 표현하면서 그의 섹스에 대한 관심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팬티의 중심부를 더욱 부각되게 커보이게 하는 모습에서 알랙스와 그의 일당이 얼마나 성에 관심이 많은지 알 수 있게하는 대목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또한 마치 아기 귀저기와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이것도 아직 어린 알랙스를 표현하고자 하는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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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에서는 음악과 영상의 매치에 상당한 노력을 쏟아 부었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장면은 빌리보이 일당과 싸우는 알랙스 일당입니다. 이 장면에서는 클래식이 흘러나오면서 그것에 맞추어 싸움이 일어납니다. 클래식의 웅장함을 병이 깨지거나 책상이 부서지는 장면과 매치되게 하면서 우리가 친숙하게 교양을 쌓고 마음의 안정을 주던 것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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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보면 클래식중에서도 우리에게 친숙한 베토벤의 9장 교향곡을 들을수 있습니다. 여기서 베토벤 9장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였을까요? 단지 주인공 알렉스가 좋아하는 음악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베토벤 9장이 주는 의미가 너무 거대합니다. 왜냐하면 베토벤 9장의 멜로디가 영화 전반에 깔려있고 알랙스의 심리 묘사에도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위의 장면에서 볼수 있듯이 그냥 배경 음악으로만 쓰인것이 아닌 영화 전체에 베토벤 9장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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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배우가 부르는 베토벤 9장 교향곡의 합창을 듣는 알랙스의 표정은 마치 탐욕의 전율을 느끼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의 탐욕의 표정은 여인을 향한것이 아닌 베토벤 9번 교향곡에 대한 탐욕이였습니다. 그가 얼마나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좋아하는가를 알수 있고 그의 한쪽눈의 마스카라와 함께 합창이라고 하는 환희의 송가가 탐욕의 송가가 될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였습니다. 또한 이 합창의 노래로 인해 알랙스와 그의 일당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것이 점점 커져가 결국에 교도소에 들어가는 계기가 되는 부분이 바로 이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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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로 9번 교향곡의 사용에 대해 놀라게 한 장면이 바로 이장면 이였습니다. 여성과 뱀하면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아마도 성모 마리아와 선악과를 따먹게 한 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여성의 환희의 포정과 함께 뱀은 그녀의 음부를 탐하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성과 뱀을 통해 달콤한 사과 즉 성에 눈을 뜨게되는 알랙스를 표현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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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까지 모자른듯 예수의 고통의 형상을 누드로 표현하였고 여기에 더 충격을 주고자 네명의 예수를 마치 그 시대를 풍미했던 비틀즈와 같은 모습으로 그려놓았습니다. 못에 박힌 팔은 마치 구호를 외치는듯한 포즈가 되었으며 다리는 흥겹게 박자를 맞추고 있는것과도 같습니다. 또한 9번 교향곡에 맞추어 예수의 못에 박힌 팔, 면류관을 쓴 머리, 옆구리에 찔린 자국등을 보여주어 잊혀지지 않는 영상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여기서 스탠리 큐브릭은 9번 교향곡을 재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신께 감사드리는 마음을 담은 9번 교향곡과 예수 석상을 통해 그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변질되어 가고 있는 기독교 문화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마치 예수님과 성경을 비틀즈와 음악으로 대비시켜 종교의 의미는 잊어버린채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을 우상과도 같이 숭배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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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위 장면에서의 테크노풍으로 바꾼 베토벤 9장의 멜로디는 판타지적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그의 심리 상태 역시 변화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포장되지 않은 백지상태의 그가 자신을 포장하여 여성을 꼬시듯, 최고의 교향곡 베토벤 9번의 테크노풍의 변화로 그가 지금 변화의 시기로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는 장면이였습니다.  그가 즐겨입던 옷은 흰색에 모자를 눌러쓴 판타지적인 이미지 였다면 위의 장면에서는 정장풍의 사회적인 이미지를 주입시켜 주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위의 장면에서 스텐리 큐브릭의 전작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연상시키는 포스터를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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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9장 교향곡의 의미를 다시한번 살펴볼 수 있는 장면 입니다. 알랙스와 그의 동료들을 결정적으로 돌아서게 하는 장면중에 하나입니다. 아까 여성이 부른 합창 교향곡을 통해 균열이 시작 되었다면 이번 9번 교향곡으로 그는 그의 동료들과 완전히 돌아서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 줄거리와 음악에 대한 연관성에 대해 두가지 다 이야기 하려다보니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해해 주면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고 알랙스의 폭력과 성에 대해 잘 설명해주는 두 장면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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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로 싱인 인더 레인을 부르며 폭력을 행하는 알랙스의 모습입니다. 당대 최고로 감미로운 장면으로 추앙받던 빗속에서 싱인 인더 레인을 부르며 춤추는 장면을 비가 오는 어느날밤 강간과 폭력을 행하는 장면으로 변화시켜 클래식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음악을 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으로 바꾸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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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장면으로 또한번 클래식으로 얼마나 잔인한 장면을 연출 할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알랙스가 들고 있는 커다란 성기 모양의 조형물은 알랙스의 강간에 반항을 하는 여성을 무참히 짖밟아버리는 장면의 표현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결국 저 여성은 조형물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는데 그것은 강간으로 여성을 죽일수도 있다는 표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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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지는 빠른 템포의 클래식과 세남녀의 섹스신. 지금이야 많이 사용되고 있는 기법이지만 그때 그시절에는 스탠리 큐브릭이 처음으로 시도한 장면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단순히 새로운 효과를 사용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장면을 통해 어린 알랙스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빠르게 돌린것과도 같은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빠르게 어른이 되어가는 장면을 섹스신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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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도소에 들어간 알랙스의 모습입니다. 이것으로 그는 더이상 하얀옷의 어린 아이가 아닌 정장을 입은 어른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잔인하지만 천진스럽고 성에 대해 탐욕적이지만 순수한 그의 모습이 끝나고 어른과도 같이 자신의 욕구를 제어하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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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주입식으로 교육받고 있는 알랙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정부 혹은 예전부터 내려오던 도덕들을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차별적이고 강압적으로 주입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알랙스는 더이상 예전의 알랙스가 아닌 인습에 길들여진 알랙스로 변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베토벤 9장 교향곡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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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행진과 9번 교향곡의 조화는 마치 나폴레옹과 그에게 5번 교향곡을 받쳤던 베토벤을 떠오르게 하는 장면이였습니다. 이 장면으로 알랙스는 폭력뿐만 아니라 베토벤 9번 교향곡도 못듣게 되는 불행을 맞이하게 됩니다. 즉 9번 교향곡이 여기서는 알랙스의 순수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그것을 잃은 알랙스를 보여줌으로써 무기력하고 삶에 희망을 잃은 모습을 볼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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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입식 교육이 끝나고 돌아온 알랙스에게 더이상 자신이 설곳이 없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동안 행해왔었던 수많은 악행들로 인해 보복을 받게 됩니다. 인과응보라는 뜻으로 사용될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것으로 스탠리 큐브릭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존재의 순수성의 박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는 예전처럼 폭력을 행할수도 없고 여성을 만질수도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의 순수성은 더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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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괴롭혔던 일련의 상황들로 결국 사회적인 책임을 물게 되는 알랙스는 결코 한사람에게만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랑자로 표현되는 일반 시민부터 예전의 친구이지만 현재 경찰이 되어있는 공권력, 그리고 싱인 인더 레인으로 아내를 죽게 만든 소설가로 표현되는 언론, 이 모든 사회전반으로 부터 억압을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억압은 결국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베토벤 9장과 함께 하게 되고 결국에는 자살을 선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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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랙스의 자살시도는 결고 간단하게 볼 문제가 아닙니다. 단순히 베토벤 9번 교향곡을 듣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의 자살은 바로 사회로 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인습과 교육 그리고 순수성을 잃어버린 자신에 대한 비관의 표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는 예전부터 결코 자살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살펴보면 돈이 없어서, 사업에 실패해서, 사랑하는 연인에게 버림받아서 등등 혼자 아무 이유없이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즉 자살은 사회로부터 자신에게 받은 살인교사와 같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스탠리 큐브릭도 그런 생각을 하였는지 그의 자살을 주변의 괴롭힘때문에 혼자 괴로워하다가 죽는게 아닌 자살 직전까지도 끊임없이 그를 괴롭혀 자살로 몰고 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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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실패한 알랙스는 살아남고 자신이 받았던 치료를 되돌려 예전의 잔혹한 성격으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장면으로 베토벤 9번 교향곡의 마지막인 환희의 송가와 함께 합니다. 환희의 송가와 함께하면서 그의 머리속에는 온통 섹스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유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즈 와이드 셧의 마지막 니콜 키드먼의 대사였던 "Fuck" 과 마찬가지로 섹스가 얼마나 인간에게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였습니다.

이것으로 시계태엽오렌지에 대한 글을 마칠까 합니다. 아직 스탠리 큐브릭이 말하고 싶었던 시계태엽 오렌지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판단으로 본 시계태엽 오렌지는 성과 폭력에 대해 말하고 싶은게 아니라 한 인간이 순수했던 시절과 그것을 잃었을때 얼마나 힘들고 비참한가를 역설적으로 성과 폭력에 물들어 있는 알랙스를 통해 보여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다른 작품들도 하나하나 봐야되겠지만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스텐리 큐브릭의 영화 세계를 짐작할수 있었던 명작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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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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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스탠리큐브릭의 충격적인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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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ybrid 2007/12/09 18:52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이 영화의 분석은 이곳이 잘되어 있습니다.
    http://dvdprime.paran.com/dvdmovie/DVDDetail_Sub.asp?dvd_id=1119&master_id=0
    http://dvdprime.paran.com/dvdmovie/DVDDetail_Sub.asp?dvd_id=1677&master_id=0
    정말 놀랍도록 자세하게 분석되어 있습니다. ㅎㅎ

    • 비퍼플 2007/12/09 1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헉 진짜 잘되어 있는곳이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또하나 느낀점은 캡쳐하는 화면이 다들 비슷하다는
      점이네요. 저도 인터넷에서 찾은게 아니라 직접
      캡쳐한건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캡쳐
      를 하는거 보면 인상적인 부분은 비슷한가봐요..^^